단순한 열망

🔖 이 예술가 그룹은 동질화된 스타일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도약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혁명적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하거나 현실을 기록하려 하지 않았다. 예술가의 개성을 전달하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세계의 일부가 되기에 충분했다.
관람자는 그 자체를 감상해야 했다. 감각이 해석을 대체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미니멀리즘이 실내장식이 아니라 예술의 한 장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며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 채 가르침을 얻고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핵심이 아니다.
어느 공간에 놓인 저드의 상자와 마주한 사람들은 이 작품을 시간과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바라본다. 그 사물이 고유하지 않더라도 사물에 대한 경험이나 인식은 고유하다. 그러므로 갤러리에 놓인 믹서가 모나리자만큼 매력적일 수 있다. 미니멀리스트의 오브제들은 발터 베냐민이 말했듯 산업 화 이전의 고유한 예술 작품이 지녔던 "아우라"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은 우리의 "기술 복제 시대"와 완벽하게 어울린다. 개성 없이 똑같은 형태가 고유한 힘을 잃지 않고 반복적으로 제작될 수 있는 이유는 예술 작품의 의미란 제작자가 아니라 관람자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 "사막은 언제나처럼 비어 있었지만 푸르고 아름다웠다. 그러다 이 땅과 토끼, 메추라기, 도마뱀, 벌레는 사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저드는 썼다. "관찰은 우리의 기준일 뿐이다. 도마뱀이 벌레를 보며 품는 생각과 다를 것이 없다. 관찰은 타당성도 없고 객관성도 없기에 이 땅은 아름답지 않다.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땅은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이것이 미니멀리즘의 강력하고 무서운 통찰이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각종 상품과 인테리어, 패션 등에서 연상되는 미적 단서와 아무 관련 없다. 미니멀리즘은 좋아 보일 필요가 없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예술적 미의식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그리 필연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인위적 창조물임을, 미니멀리즘은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미니멀리즘은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요구한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순간순간의 본질적인 경이, 사물의 존재감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고상함을 지향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저드는 그해 겨울 어느 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마침내 예술의 정의가 떠올랐다. 예술은 바로 지금의 모든 것이다."

🔖  그는 철학의 구조에서, 사랑하는 사람 의 팔 위에 있는 보잘것없는 천 조각처럼 평범한 것에서, 시선의 언저리에 있기에 더 낭만적인 사물에 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시간은 인간이 만든 온갖 상징을 마모시킨다. 시간이 흐르며 뿌리가 드러나고, 그것이 상류 문화든 하류 문화든, 추상적이든 사실적이든 모두 똑같이 근원적 정신의 소산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구키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그 감정을 수집해 마치 봄꽃처럼 책장 사이에 끼워 넣 었다. 그 덕에 약 1세기가 흐른 뒤 내가 그 감정에 접근해 감동할 수 있었다. 우연히 그것이 내게 와닿은 것처럼 미래의 독자들에게도 가닿을 것이며,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분석되고, 특정한 누군가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완전하게 전달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오직 불완전함 속에서만, 남겨진 틈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 유행하는 미니멀리즘 미학은 해결책이 되기보다는 불안의 증상에 가깝다. 위태로운 시대에 조금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불안을 달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미술, 음악, 건축, 철학의 예는 완벽한 깨끗함이나 특정한 스타일과 아무 관련이 없다. 매개되지 않는 체험을 추구하며, 강요하기보다는 통제를 포기하고, 스스로 방어벽을 치는 대신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고, 모호함을 수용하고, 반대편의 존재가 결국 서로 같은 전체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처럼 더 깊은 형태의 미니멀리즘은 해시태그로 분류하거나 티셔츠로 판매할 수 없다. 단계별 지침은커녕 정답도 없으며 위험 요소를 동반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유행의 범주를 넘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의 삶을 제안한다.